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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심씨 항렬 시조 족보 조회

 

삼척 심씨 시조 항렬 조회하기 ▶

 

 

삼척심씨의 역사와 인물

관향의 연혁
삼척은 강원도 남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본래 실직국이었습니다. 102년 신라 파사왕 23년에 신라에 합병되었으며, 505년 지증왕 6년에 실직주라 불렸습니다. 경덕왕 때 삼척군이 되었으나, 고려 현종 때 삼척현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이후 조선 태조 때 삼척부로 승격되었고, 1404년 태종 13년에 도호부가 되었습니다. 1895년 고종 32년에 삼척군이 되었습니다.

 



가문의 유래
삼척심씨의 시조인 심동로는 원래 이름이 심한이었습니다. 고려 말에 중서사인과 예의판서, 집현전제학 등을 지내고 지제고에 올라 진주군에 봉해졌습니다. 1361년 공민왕 10년에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나자, 공민왕이 죽서루에서 직접 칙명을 내려 ‘동로’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식읍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고려 문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문림랑으로 군기시 주부를 역임한 심척충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계보가 명확하지 않아 후손들은 심동로를 시조로 삼고, 삼척을 본관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심동로의 아들 심공무는 문과에 급제하여 봉선대부로 서운관부정을 지냈으며, 손자인 심원복은 현감을 역임하며 가문을 번성시켰습니다. 심동로의 현손인 심가보는 조선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양구와 흡곡현령을 지냈습니다. 그의 아들 심희전은 중종 때 병조 좌랑을 거쳐 홍원과 흡곡현령을 역임하였으며, 춘추관의 기주관을 지내고 지제교에 올랐습니다. 또한,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된 심준과 함께 이름을 떨쳤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심준의 아들인 심언경과 심언광 형제가 가문의 명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1516년 중종 11년에 문과에 급제한 심언경은 여러 관직을 거쳐 의정부 좌찬성에 올랐습니다. 그의 동생 심언광은 학문이 뛰어나 호당에 선발되어 사가독서를 했던 인재였습니다. 그는 이조판서를 지내며 형 심언경과 함께 김안로를 천거했으나, 이후 김안로가 전횡을 일삼자 이를 반대하다가 오히려 그의 모함을 받아 함경도 관찰사로 좌천되었습니다.

심언광의 손자인 심장원은 퇴계 이황이 "시재에서는 내가 따를 수 없다"고 극찬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강릉에서 낚시를 즐기며 꽃과 대나무를 가꾸는 데 몰두하였습니다. 또한, 고서와 그림을 수집하며 학문 연구에 힘썼고, 시문 수십 권을 남겨 문명을 떨쳤습니다.

이외에도 심언광의 아들 심운은 문집을 남겼으며, 합천에서 효자로 유명했던 심일삼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한강 정구의 문인이었던 심지택은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으며, 정조 때 공명과에 급제하여 병조와 이조의 좌랑을 거쳐 홍원현감을 지낸 심보영과 함께 삼척심씨의 명성을 빛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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