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고령 신씨 항렬 족보 조회

 

고령 신씨 항렬 족보 조회하기 ▶

 

 

고령 신씨의 유래

고령 신씨의 시조인 신성용은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습니다. 신성용의 선대는 신라 시대의 공족으로, 고려 태조가 각 지방의 호장을 임명할 당시 여러 대에 걸쳐 고령에서 호장 직을 맡아온 향리 출신이었습니다.

 



고령 신씨는 고려 시대에 들어서 크게 번성하였으며, 신라 이래 지방 호족으로서 상당한 권세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시조 신성용이 문과에 급제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하면서, 명문 가문으로서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령이 본관으로 정해진 것을 보면, 신성용 이전에도 신씨 가문이 이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토착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령 지역은 과거 대가야의 중심지였으며, 대가야 왕국은 16대에 걸쳐 520년 동안 존재하다가 신라 진흥왕 때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이후 경덕왕 16년(757년)에 고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고려 시대인 현종 9년(1018년)에는 영천현으로 불리며 경산부(현재의 성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태종 대에 고양군의 '고'와 영천현의 '영'을 따서 고령현으로 개칭되었고, 이후 고종 32년(1896년)에 성주의 9개 면과 현풍의 3개 면을 병합하여 현재의 고령군이 되었습니다.

 



고령 신씨의 분파는 7세손인 신장, 신명, 신제 세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장은 임헌공파, 신명은 정은공파, 신제는 감찰공파로 나뉘었으며, 이들의 후손들이 각기 새로운 분파를 형성하였습니다.

그보다 앞서 3대조에 신인재와 신인기 형제가 있었는데, 신인재의 후손은 번성하였으며, 신인기의 후손들은 시중공파로 분파되었습니다.

엄현공파에서는 업헌공의 다섯 아들 신맹주, 신중주, 신숙주, 신송주, 신말주의 후손들이 서윤공파, 순창공파, 문충공파, 안동공파, 귀래정공파로 나뉘었습니다.

정은공파는 정은공의 세 아들 신명정, 신중정, 신숙경의 후손들이 생원공파, 통덕랑공파, 성오재공파로 나뉘었으며, 감찰공파는 감찰공의 네 아들 신자교, 신자강, 신자동, 신자정의 후손들이 사간공파, 인천공파, 사정공파, 학생공파로 나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씨족통보에 따르면 신씨의 본관은 171개가 기록되어 있으나, 그중 평산 신씨, 고령 신씨, 아주 신씨를 제외한 나머지 본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중에서도 평산 신씨와 고령 신씨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역사적으로도 많은 인물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고령 신씨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며 전통적인 명문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