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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박씨 항렬 족보 조회

 

순천 박씨 항렬 족보 조회하기 ▶

 

[정의]
순천박씨는 박영규를 시조로 하고 박난봉을 중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순천시의 토착 성씨입니다.

 



[연원]
순천박씨의 시조는 나말여초 시기 순천 지역의 호족이었던 박영규(朴英規)입니다. 그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甄萱, 867936)의 사위로서 후백제 건국에 기여하였으나, 견훤이 패한 후 왕건(王建, 877943) 편에 섰습니다. 박영규의 세 딸이 태조와 정종의 후비가 될 정도로 박씨 가문의 위세는 대단하였습니다. 하지만 박영규와 그 후손들은 고려의 중앙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순천 지역에서 향리로 활동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박영규는 사후에 순천 해룡산의 산신으로 신앙되었습니다.

 



[입향 경위]
제4차 몽골 침입 당시 순천 인제산(현 난봉산)에 산성을 쌓고 외세를 막아낸 박난봉(朴蘭鳳)이 등장하면서 가문의 계보가 다시 이어졌습니다. 박난봉은 정승대광보국숭록대부(政丞大匡輔國崇祿大夫) 벼슬을 지냈으며,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사후에는 인제산의 산신으로 신봉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의 후손들은 순천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으며, 박난봉을 득관 중시조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후 순천박씨는 순천 지역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몽골 간섭기에는 중앙 관료로도 진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전국적인 명문가로 성장하였습니다.

 



고려 시대 박영규 이후 중앙 관직에 진출한 것으로 확인되는 첫 번째 인물은 박숙정(朴淑貞)입니다. 그는 순천박씨 가문에서 세대를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인물로, 후손들은 박숙정을 1세로 삼아 대수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자 박천상(朴天祥)은 판개성부사를 역임하였고, 증손자 박가흥(朴可興, 13471427)은 밀직부사라는 고위 관직을 지냈습니다. 현손 박석명(朴錫命, 13701406) 역시 좌명공신으로 책봉되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박숙정의 또 다른 손자인 박안생(朴安生)의 가문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박안생의 둘째 아들 박중림(朴仲林, ?~1456)은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에서 근무하였으며, 공조판서와 형조판서를 역임하였습니다. 나아가 조선 시대 문반 최고 영예인 대제학의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박중림의 다섯 아들 중 박팽년(朴彭年, 1417~1456), 박인년(朴引年, ?~1456), 박기년(朴耆年, ?~1456), 박대년(朴大年, ?1456) 등 네 명이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막내 박영년(朴永年, ?1456) 또한 소과에 합격하였습니다. 학문적 전통도 깊어 성삼문(成三問, 14181456), 하위지(河緯地, 14121456) 등이 박중림을 스승으로 섬겼습니다.

박천상-박가흥-박석명으로 이어지는 계열과 박안생-박중림-박팽년으로 이어지는 계열은 당대의 어떤 문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명문가였습니다. 이들은 동고조(同高祖)의 혈연적 유대를 강화하며, 동일한 순천박씨라는 정체성을 확립하였습니다. 이후에도 중종반정을 주도한 박원종(朴元宗, 1467~1510) 등을 배출하며 명망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5세기 중엽 이후 순천박씨의 주요 세력은 순천 지역을 떠나 전국 각지로 분파되었습니다.

한편, 순천에 남은 후손들도 있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순천 지역에 거주하는 순천박씨는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현황]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조선의 성씨』(『朝鮮の姓』)에 따르면, 순천박씨가 세거하는 마을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순천박씨의 인구가 많지 않고 족세도 크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961년 순천향교에서 편찬한 『순천씨족보』에 따르면, 중종반정을 주도했던 박원종의 후손들이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남가리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전라북도 정읍시 정우면, 충청북도 청주시,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등지에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순천박씨 인구는 총 10만 5,208명이며, 이 중 572명이 순천 지역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관련 유적]
순천박씨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해룡산성과 난봉산성이 있습니다. 해룡산성은 박영규와 관련이 있으며, 난봉산성은 박난봉과 관련이 있습니다. 난봉산에는 박난봉의 묘소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1930년 순천시 조곡동 난봉산 기슭에 시조와 팔대군을 주향으로 모신 숭성전이 건립되었으며, 1953년 순천시 조곡동 죽도봉 산록으로 이전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정전, 회덕문, 경숭문, 동재, 서재 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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