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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김씨 족보 항렬표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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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래

울산김씨의 시조인 김덕지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그는 935년(신라 경순왕 9년) 10월,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신라의 왕위를 넘기려 하자 형인 태자와 함께 강하게 반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족을 뒤로한 채 형과 함께 개골산(금강산의 겨울 이름)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증보문헌비고》와 《울산김씨족보》에는 그가 학성부원군에 봉해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가 화엄종에 귀의하여 법수사와 해인사를 오가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는 설도 있으며, 당시 승명은 범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습니다.

 



그 후 후손들의 세계가 실전되었다가, 14세손 김환이 고려 시대에 벼슬길에 나아가 충숙왕 때 삼중대광(정1품)과 광록대부에 올랐으며, 학성군에 봉해졌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김환을 중시조로 삼고, 학성의 별칭인 울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 본관 역사

울산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본래 진한의 땅이었으나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했습니다. 신라 효공왕 때 학이 금으로 된 신상을 물고 왔다고 하여 ‘신학성’이라 불렸습니다. 고려 태조 때 흥려부로 승격되었으나, 성종 때 공화현으로 강등되었으며, 별칭으로 학성이라 불렸습니다. 고려 현종 때 울주로 개칭되었다가 조선 태종 4년(1404년)에 울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 대표적인 인물

김인후: 조선 중종 때의 유명한 유학자로, 문묘에 종사되었습니다.
김기하: 조선 숙종 때 후릉참봉을 역임한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며, 연호사에 배향되었습니다.
김병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습니다.
김성수: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김상협: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환의 아들 김계흥이 봉익대부 판도판서를 지냈습니다. 증손 김온은 1387년(우왕 13년) 문과에 급제한 후 종부시주부를 지냈고,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이조좌랑이 되었습니다. 이후 개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밀양부사를 거쳐 가선대부 여산군에 봉해졌습니다. 하지만 양주목사 재임 중 태종의 외척 세력 제거 정책에 휘말려 처가인 민무구 형제 사건에 연루되면서 화를 입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울산김씨가 자랑하는 인물로는 성리학의 대가인 김인후가 있습니다. 그는 김안국의 제자로 성균관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1540년(중종 3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정자로 등용되었습니다. 이후 호당에 선발되어 사가독서를 했으며, 박사·세자시강원 설서를 거쳐 부수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기묘명현의 신원 복원을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부모 봉양을 이유로 옥과 현감으로 나갔습니다. 이후 1545년(인종 1년)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천문, 지리, 의학, 수학 등에도 정통했으며, 그의 학문은 조선 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김경수는 남문에서 의병을 모집해 큰 활약을 펼쳤으며, 그 공을 인정받아 공조참판·의금부동지사·동지중추부사에 올랐습니다. 김신남 역시 운봉에서 전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책록되고 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김천록은 정유재란 때 여주 판관으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책록되었으며, 광양군 옥곡에 정려가 세워졌습니다. 김대명은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풍기군수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그 외에도 광해군 때 문과에 급제하여 부사를 역임한 김종진, 숙종 때 후릉참봉을 지낸 문신이자 성리학자로 연호사에 배향된 김기하, 승지를 지낸 김우휴 등이 유명합니다. 또한 의금부 도사 김경휴, 군수 김봉우, 교리 김진우, 시독 김동수 등이 함께 이름을 남겼습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학자인 김녹휴, 의병장 김익중, 중추원 의관 김대수, 군수 김기중,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 김성수, 국무총리 김상협 등이 가문의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 인구수

2000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울산김씨는 남한에 총 11,270가구, 36,225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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