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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 김씨 족보 항렬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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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의 연혁]
언양(彦陽)은 경상남도 동북부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신라 시대에는 거화현(居火縣)이라 불렸으며, 경덕왕(景德王, 제35대 왕, 재위 742~765) 때 헌양(巘陽)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이후 고려 시대에 언양(彦陽)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가문의 유래]
「언양김씨신유보(彦陽金氏辛酉譜)」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시조 김선(金鐥)께서 고려 시대에 언양군(彦陽君)에 봉군되었기에 후손들이 본관을 언양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김선(金鐥)의 손자인 정보(精寶)께서 고려에서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냈으며, 증손인 경숙(鏡淑)께서는 대장군(大將軍, 정3품 무관직)을 역임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수(壽) 또한 신호위별장(神號衛別將)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손자인 언련(彦連)은 신호위중랑장(神號衛中郞將)으로 활약하였습니다.

 



언양김씨의 대표적인 인물인 취려(就礪)께서는 음보(蔭補)로 정위(正尉)에 임명된 후,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이 되었으며 동북계를 진압하였습니다. 이후 대장군(大將軍)에 올라 1216년(고려 고종 3년)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내고, 1219년(고종 6년) 부방(副將) 다지(多知)의 반란을 평정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와 판호부사(判戶部事)에 오르셨습니다. 이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태자태사(太子太師)로 특진하였으며,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이르렀습니다. 평소 강직하고 청렴한 성품을 지니셨으며, 전장에서 뛰어난 전략으로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다.

취려(就礪)의 아들 전(佺)께서는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상장군(上將軍), 판리부사(判吏部事)에 올랐으며, 그의 아들 양감(良鑑, 상장군으로 언양군에 봉군)과 변(賆, 첨의평리 역임) 또한 유명한 인물입니다. 양감(良鑑)의 셋째 아들 문연(文衍)은 첨의중호(僉議中護)를 거쳐 찬성사(贊成事)에 올라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으며, 변(賆)의 아들 윤(倫)은 충목왕(忠穆王, 제29대 왕, 재위 1344~1348) 초에 찬성사를 거쳐 좌정승(左政丞)에 올라 언양부원군(彦陽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윤(倫)의 아들 경직(敬直)은 문하시중(門下侍中)과 검교첨의찬성사(檢校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언양백(彦陽伯)에 봉군되어 가문을 중흥시켰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숙보(叔甫)께서 선천군수(宣川郡守)를 거쳐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내시고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으며, 그의 아들 관(瓘)께서는 1451년(문종 1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을 지내셨습니다. 이후 세조(世祖) 때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적개이등공신(敵愾二等功臣)으로 책봉되었으며, 종부시정(宗簿寺正, 왕실의 보첩을 담당하던 정3품 관직)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강원도와 황해도의 관찰사를 거쳐 예종(睿宗) 초기에 언양군(彦陽君)에 봉해졌으며,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이르렀습니다.

영의정(領議政)에 추증된 언침(彦琛)의 아들 천일(千鎰)께서는 임실 현감(任實縣監)을 지내셨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주(羅州)에서 고경명(高敬命), 박광옥(朴光玉),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조정으로부터 판결사(判決事)의 직책과 창의사(倡義使)의 호를 받고 결사대를 조직하여 왜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공을 세우셨습니다. 이후 진주성(晋州城)을 사수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아들 상건(象乾)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절하였으며, 후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된 광필(匡弼)의 아들 준(浚)께서는 선조(宣祖)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교동현감(喬桐縣監)을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광해군(光海君)의 폭정을 개탄하며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셨다가,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죽산부사(竹山府使)를 지내고 안주목사(安州牧使) 겸 방어사(防禦使)가 되셨습니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 안주성이 함락되자 가족과 함께 순절하셨으며, 후에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습니다.

또한,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를 지낸 중만(重萬), 병조참판(兵曹參判)을 역임한 석중(石重)과 취련(取鍊), 군자감정(軍資監正) 도손(道遜), 중추부사(中樞府使) 덕순(德純)·창우(昌宇)·희채(禧采), 이조참판(吏曹參判) 순봉(舜鳳), 공조참의(工曹參議) 사호(士豪)·두열(斗烈) 등의 인물들도 가문을 빛낸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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