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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安東金氏)는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구(舊)안동’과 고려 태사(太師)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新)안동’의 두 계통으로 나뉩니다. 조선시대에 이 두 안동김씨 가문에서는 정승 19명, 대제학 6명, 왕비 3명을 배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성씨인 김씨는 크게 가락국 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수로왕계(김해김씨)와 신라 왕실의 박·석·김 3성 중 하나인 김알지계로 나뉩니다. 『씨족통보』에 따르면 김씨의 본관은 총 623본이며, 이 중 김알지계를 따른 김씨 본관은 6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라 왕조의 김씨들은 모두 김알지의 후손들입니다. 김알지의 7세손인 미추왕(신라 13대)이 처음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김알지의 28세손)이 935년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주기까지 총 38명의 김알지 후예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울진 지역의 안동김씨는 2002년 말 기준으로 울진의 본관별 성씨 인구 순위에서 18위를 차지하였으며, 약 300가구에 1,10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이하게도 울진 지역에서는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가 종친회를 통합하여 매년 읍·면 단위로 순회하며 회합을 열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합은 1971년 경주 출신으로 울진군수를 지낸 신안동 출신 김일규 군수가 재임 시 신안동김씨 울진군종친회 결성을 주도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김 군수는 같은 김알지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의 통합종친회를 발족시켰으며, 그 후 약 35년간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울진군지에 기록된 울진 지역 안동김씨의 입향 역사를 살펴보면, 구안동김씨는 약 400년 전인 1595년(선조 29년)에 절충장군 김몽생(金夢生)이 처음 입향하였으며, 신안동김씨는 김몽생이 입향한 후 약 130년이 지난 1721년(경종 원년)에 김우상(金愚商)이 최초로 울진에 정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묘소가 온정면 광품리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온정 지역으로 입향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몽생의 계보를 보면, 그의 분파조가 익원공(翼元公) 김사형이라 기록되어 있어 구안동의 시조가 김숙승(金叔承)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일부 기록에서 시조를 김일긍(金日兢)으로 표기하고 있어 후손들이 이를 바로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안동의 시조 김숙승(金叔承)은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은열의 둘째 아들로, 공부시랑과 평장사를 지냈습니다. 중시조(1세)인 김방경(金方慶, 충렬공)은 경순왕의 9세손으로 고려 원종 때의 명장입니다. 그는 삼별초와 왜구를 섬멸하여 정란정국공신이 되었으며, 벼슬이 시중, 삼중대광첨의중찬(三重大匡僉議中贊), 판전리사사, 도원수에까지 이르렀고, 상락군에 봉해졌습니다.
구안동 가문은 방경의 아들과 손자대에 크게 중흥하였습니다. 방경의 아들 선은 밀직사부지사(密直司副知事), 흔은 찬성사, 순(恂)은 삼사판사(三司判事), 윤(倫)은 밀직사지사(密直司知事)의 벼슬을 지냈습니다. 또한, 선의 아들 승용(承用)은 대제학, 승택(承澤)은 평장사, 영돈(永暾)은 유명한 무장, 영후(永煦)는 우정승을 지내어 모두 명신·충신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특히 영후의 후손들이 조선 전기에 세력을 크게 확장하면서 구안동 가문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구안동의 세계(世系)는 방경의 현손대에서 21파로 분파되었으며, 현재 13파가 남아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영후의 손자인 익달(益達)의 제학공파(提學公派), 사렴(士廉)의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사형(士衡)의 익원공파(翼元公派) 등 3파가 구안동 인구의 60~70%를 차지하며, 이들을 통칭하여 ‘제안익(提按翼) 3파’라고 부릅니다.
구안동 가문 출신으로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원주목사 김제갑(悌甲)과 그의 조카 시민(時敏)·시약(時若) 형제, 판서를 지낸 청백리 김시양(時讓)과 그의 아들 이조판서 김휘(徽), 숙종 때의 시인 김득신(得臣), 무장이자 영의정이 추증된 김응하(應河)와 훈련대장 김응해(應海) 형제, 훈련대장 김중기(重器) 등이 있습니다. 또한, 현대의 인물로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던 백범(白凡) 김구(九)가 있습니다.
신안동의 시조 김선평(金宣平)은 신라 말기 경애왕 때 고창(안동의 옛 지명)의 성주였습니다.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경애왕을 살해하자, 930년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병산대첩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고려에 귀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태광태사(太匡太師)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후손들은 이를 기려 본관을 안동으로 하였습니다.
조선 중기 이후 신안동김씨는 김극효(金克孝)를 중시조로 삼고 있으며, 그의 후손들이 조선 후기의 세도가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좌의정 김상헌(尙憲)의 후손들은 왕비 3명을 배출하며 조선 후기 권력의 중심에 섰습니다.
조선시대 신안동김씨 가문에서는 부자 영의정, 형제 영의정, 부자 대제학 등 12명의 정승과 3명의 왕비, 수십 명의 판서가 배출되었습니다. 한말의 개혁가 김옥균(玉均), 3.1운동 독립선언문 33인 중 한 명인 김완규(完圭), 독립운동가 김좌진(佐鎭) 장군도 신안동김씨 출신입니다.
이처럼 구안동김씨와 신안동김씨는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조선 후기에는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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