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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김씨 족보 항렬 조회

 

삼척 김씨 항렬 족보 조회하기 ▶

 

 

[정의]
삼척김씨는 강원도 삼척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입니다.

 



[개설]
삼척김씨(三陟金氏)는 신라 대보공 김알지(金閼智)를 원조로 하며,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여덟째 아들인 김추(金錘)를 중시조로 합니다. 김추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고 삼척군(三陟君)에 봉해지면서 본관을 삼척(三陟)으로 삼았습니다. 김추는 김알지의 29세손입니다.

 



[연원]
삼척의 옛 명칭은 실직국(悉直國)이며, 신라 파사왕(婆娑王) 때 신라에 복속되었습니다. 이후 505년(지증왕 6년)에 실직군주(悉直軍主)를 두었으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삼척군(三陟郡)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조선 태조 2년(1393년)에는 태조의 고조부 목조(穆祖)의 비(妃)의 외가가 있는 지역이라는 이유로 삼척부(三陟府)로 승격되었으며, 태종 13년(1413년)에는 도호부(都護府)로 개편되었습니다.

 



[입향 경위]
경순왕이 고려에 나라를 넘긴 후, 고려 태조의 장녀인 낙랑공주(樂浪公主)와 혼인하여 여덟째 아들인 김추를 낳았습니다. 김추는 문하시중을 역임한 후 삼척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삼척 지역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 삼척을 비롯해 평안도 중원군, 함경도 북청, 경기도 양주군 및 용인군 등 여러 지역에 집성촌을 형성하며 세거하게 되었습니다.

[현황]
200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삼척김씨는 전국적으로 25,442가구, 79,985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삼척김씨 가문의 충절은 이어졌습니다. 상장군(上將軍) 김중순(金仲淳)은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평생을 은거하며 보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김공묘갈(金公墓碣)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삼척김씨의 대표적인 인물로 김병충(金秉忠)이 있습니다. 그는 중종반정(中宗反正) 때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과 함께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을 막기 위해 거사를 계획하였으며, 반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에 정국공신(靖國功臣)으로 인정받아 공훈을 남겼습니다.

중종 때 동래부사(東萊府使)를 지낸 김양필(金良弼)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삼포왜란(三浦倭亂) 당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어모장군(禦侮將軍)과 경상도 절제사(慶尙道節制使)를 겸임하였습니다. 그의 치적은 당시 지역 주민들에게 널리 칭송받았습니다.

현재 삼척김씨 대종회에서는 '실직군왕대제'를 매년 봉행하고 있습니다. 실직군왕의 능이 1838년(무술년)에 확인되면서 단사(壇舍)와 제각(祭閣)이 세워졌고, 이후 망제를 시행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제는 매년 음력 3월 15일 오전 11시에 열리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던 종인들이 모여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봉행됩니다.

[관련 유적]
강원도 삼척시 성북동에는 김추의 외아들 김위옹(金渭翁)이 묻혀 있는 실직군왕릉(悉直君王陵)이 있습니다. 이 능은 강원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척김씨 후손들에게 중요한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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