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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명주군(강릉의 옛 명칭) 왕 김주원(金周元)입니다. 그는 신라를 통일한 무열왕 김춘추의 6세손이며, 신라 37대 선덕왕 때 각간으로서 시중(신라의 최고 관직)과 병부령(군사 총책임자)을 겸임하였습니다. 신라 6만 대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지녔으며, 명주를 중심으로 양양, 삼척, 울진 등 영동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강릉김씨는 신라 김씨 중 가장 먼저 분적하였습니다. 시조 김주원은 김종기, 김헌창, 김신 등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둘째 아들 김헌창은 헌덕왕 때 공주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켜 국호를 ‘장안’이라 하고 전라·충청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실패 후 자결하였습니다. 맏이 김종기의 손자 김양은 서기 838년 민애왕 김명이 희강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는 패륜을 저지르자 이에 분개하여 청해진에서 군사를 일으켜 민애왕을 제거하였습니다. 이후 김우징을 신무왕으로 세우고 정권을 왕실에 돌려놓았습니다.
강릉김씨는 셋째 아들 김신의 후손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그가 명주군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서거하자 군신회의에서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경주 왕실에서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었고, 군신회의가 열리는 날 폭우로 인해 알천(현 경주 부근의 하천)을 건너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군신들은 “이는 하늘의 뜻이다”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으니, 그가 원성왕입니다.
이후 원성왕은 김주원에게 왕위를 권하였으나 그는 끝내 이를 사양하고 고향인 강릉으로 은거하였습니다. 원성왕은 그의 겸손함에 더욱 감동하여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명주를 중심으로 익령(양양), 삼척, 울진, 평해를 식읍으로 하사하였습니다.
강릉김씨 가문은 조선 명종숙종 대에 8명의 판서(선팔판), 영조정조 대에 또다시 8명의 판서(후팔판)를 배출하였습니다. 현재 서울의 팔판동이라는 지명은 당시 강릉김씨 판서들이 집단 거주하면서 생긴 이름입니다.
매월당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입니다. 스물한 살 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그는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탄하며 공부하던 책을 모두 불태우고 승려가 되어 방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혼탁한 세상에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야인으로서 살아갔습니다.
성종 2년, 37세가 되던 해 그는 왕의 부름을 받고 금오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20여 년 만에 서울에 와 보니 젊어서 친했던 서거정은 예문관 대제학, 정창손은 영의정, 김수온은 좌리공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중 정창손은 사육신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정창손이 입궐하는 것을 보고 “야, 정가 도둑놈아, 아직도 살아 있느냐?”라고 크게 꾸짖었습니다. 이에 정창손은 그의 기세에 눌려 못 들은 체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성종 13년, 48세가 되던 해 조정에서 ‘윤씨 폐비 문제’를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지자 그는 다시 유랑과 방황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10여 년을 떠돌다 성종 24년 충청도 무량사에서 생을 마감하였으며, 이때 그의 나이는 59세였습니다. 그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운한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금오산에서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며 국문학 사상 불후의 명작인 《금오신화》를 남겼습니다.
사예 김충정의 아들 김첨경은 1561년(명종 16년)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첨정을 지내고 강릉부사로 부임한 뒤 예조판서에 올랐습니다. 감찰 김종윤의 아들 김충렬은 경기도사를 거쳐 춘추관 편수관으로서 《중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습니다. 예조판서 김첨경의 후손인 김시혁은 공조판서와 좌참찬을 역임하고 판돈령부사에 올랐으며, 김시환과 김시형은 각각 예조와 병조판서를 역임하였습니다. 김기종은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영해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호조판서를 지냈습니다.
현대에도 강릉김씨 후손 중에는 정치, 학문,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인물이 많습니다.
항렬자는 34세부터 60세까지 각각 병(秉), 연(演), ○경(卿), 진(振), ○기(起), 남(南), ○래(來), 동(東), ○유(猷), 성(成), ○현(玄), 만(萬), ○구(九), 명(命), ○영(寧), 무(茂), ○기(紀), 유(庾), 재(宰), 성(聖)·중(重), 규(揆), 하(夏), 원(元), 두(斗), 택(澤), 오(吾), 장(章)으로 이어집니다.
본관인 강릉은 757년(경덕왕 16년) 명주(溟州)로 개편되어 명주도독부를 두었으며, 9군 25현을 관할하였습니다. 이후 1955년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통합하여 강릉시로 승격하면서 명주군을 분리하였으나, 1995년 강릉시와 명주군이 다시 통합되었습니다.
강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에는 강릉강씨, 강릉고씨, 강릉구씨, 강릉권씨, 강릉김씨, 강릉단씨, 강릉류씨, 강릉문씨, 강릉박씨 등 여러 성씨가 있습니다.
집성촌은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대전리, 경기도 양주시 동두천읍 보산리, 충남 연기군 서면 청라리,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일원, 전북 익산시 낭산면 일원, 강원도 삼척군, 강릉시, 함경북도 부령군 부령면 일원 등입니다.
과거 급제자는 총 326명으로, 문과 97명, 무과 19명, 사마시 205명, 역과 1명, 의과 1명, 음양과 2명, 율과 1명이 있으며, 인구는 1985년 150,577명에서 2000년 165,963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강릉김씨는 현재 강원도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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