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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전씨 족보 항렬도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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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전씨(潭陽田氏) 본관(本貫)과 유래
1. 본관의 연혁
담양(潭陽)은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입니다. 본래 백제 시대에는 **추자혜군(秋子兮郡)**이라 불렸으며, 신라 경덕왕 때 **추성군(秋成郡)**으로 개칭되었습니다. 995년(고려 성종 14년)에는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練使)**가 설치되었으나, 이후 담양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나주(羅州)에 소속되었습니다.
1199년(고려 명종 2년)에는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1391년(고려 공양왕 3년)에는 **율원현(栗原縣)**을 병합하였습니다. 1395년(조선 태조 4년)에는 군(郡)으로 승격되었으며, 1399년(정종 1년)에는 부(府)로 승격되었습니다. 이후 1413년(태종 13년)에는 **도호부(都護府)**가 되었으나, 1728년(영조 4년)에 현(縣)으로 강등되었습니다.
1895년(고종 32년)에는 담양군으로 개편되어 남원부(南原府)의 관할하에 있었으며, 1914년 창평군(昌平郡)이 폐지되면서 담양군에 병합되었습니다. 1943년에는 담양면이 담양읍(潭陽邑)으로 승격되었습니다.
2. 가문의 유래
담양전씨(潭陽田氏)의 시조 **전득시(田得時)**는 고려 시대에 누대(累代) 동안 담양에서 거주하던 향리(鄕吏)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155년(고려 의종 9년)에 **현량과(賢良科)**에 천거된 후 **갑과(甲科)**에 급제하여 **좌복야(左僕射)**와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역임하였으며,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졌습니다. 이에 후손들이 전득시를 시조로 삼고 본관을 담양으로 정하였습니다.
초기에는 6대(世)까지 독자로 계승되었으며, 전희경(田希慶)의 세 아들 대(代)에서 후손들이 분파되었습니다.
맏아들 **전록생(田祿生)**은 야은공파(埜隱公派)
둘째 **전귀생(田貴生)**은 뇌은공파(耒隱公派)
셋째 **전조생(田祖生)**은 경은공파(耕隱公派)
이후 각 파에서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며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습니다.
3. 주요 인물과 업적
전록생(田祿生)은 고려 말의 명신으로, 공민왕 때 **정당문학(政堂文學)**과 문하평리(門下評理) 등을 지냈습니다. 문무에 능하여 "문무전재(文武全材)"라는 칭송을 받았으며, 성품이 강직하였습니다.
전귀생(田貴生)은 고려 말에 **삼사좌윤(三司左尹)**과 **밀직제학(密直提學)**을 역임하였으며, 전조생(田祖生)은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문장에 뛰어나 학문이 깊었으며, 삼형제 모두 고려 말의 명신으로서 큰 명성을 떨쳤습니다.
조선 개국 후, 전귀생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을 지키며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였고, 조정의 여러 차례 벼슬 권유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전조생 또한 산속에 은둔하여 절개를 지켰으며, 그의 충절은 <두문동 72현록(杜門洞七十二賢錄)>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들 세 형제는 **삼은전선생(三隱田先生)**으로 불렸으며, 현재 전라남도 담양읍 향교 앞에는 **삼은전선생유허비(三隱田先生遺墟碑)**가 남아 있습니다.
4. 담양전씨 주요 후손
**야은공파(埜隱公派)**의 후손 중 **전우(田愚)**는 성리학(性理學)의 대가로서 이율곡(李栗谷)과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학통을 이어받아 명성을 떨쳤습니다.
**뇌은공파(耒隱公派)**에서는 전귀생의 아들 **전한(田漢)**이 **중랑장(中郞將)**을 지냈으며, 손자 **전묘(田畝)**는 **소윤(少尹)**을 역임하였습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전가종(田可種)**이 **군수(郡守)**를, **전가식(田可植)**이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역임하였습니다.
전구주(田九疇)는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의(吏曹參議)**와 **춘추관지제교(春秋館知製敎)**를 지내며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경은공파(耕隱公派)**에서는 전조생의 후손으로 전순(田順), 전엄(田淹), 전회(田澮), 전개(田漑) 등이 뛰어난 학자와 관리로 활약하였습니다. 조선 세조 때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를 역임한 전균(田畇)은 **하음군(河陰君)**에 봉해졌으며,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과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을 역임한 전여림(田汝霖)도 학문과 청렴함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전벽(田闢)은 보령현감(保寧縣監)으로 재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삼옥태수(三玉太守)"라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전윤(田潤)은 아들 전득우(田得雨)와 함께 왕을 호종(扈從)하여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으로 녹훈되었습니다.
5. 맺음말
담양전씨는 시조 전득시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충절과 학문을 중시하는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삼은전선생으로 불리는 삼형제와 성리학을 발전시킨 전우, 다양한 문관과 무관을 배출하며 가문의 명예를 빛낸 인물들이 많습니다.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본관을 중심으로 전통과 가문의 정체성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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