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순흥안씨 문성공파 항렬표 조회

 

순흥안씨 문성공파 항렬표 조회하기 ▶

 

 

순흥안씨는 순흥 지역의 토착 성씨입니다. 시조이신 안자미(安子美)께서는 고려 신종(1197~1204)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시고, 후에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으로 추봉되셨습니다. 안자미께서는 순흥현(順興縣)에 정착하여 세거하셨으며, 이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증손이신 안유(安裕, 후에 珦으로 개명하였으나 조선 문종의 어휘와 같아 다시 초명으로 사용함)께서 크게 현달하시어 후손들의 생활 근거지가 개성으로도 분화되었습니다. 시조이신 안자미께서는 세 아들을 두셨으며, 장남 영유(永儒), 차남 영린(永麟), 삼남 영화(永和)로 나뉘어 각각 1파, 2파, 3파로 구분됩니다. 이후 영유의 후손은 14개 파, 영린의 후손은 4개 파, 영화의 후손은 4개 파로 나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후손들은 주로 파주 금촌으로 이주하였으나, 여러 차례의 사화를 겪으며 전국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종가는 서울 도동에 있었으나, 후에 이북 연백으로 옮겨졌습니다. 특히 순흥에 거주하던 후손들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입었습니다.

 



대표적인 조상들
시조의 증손이신 안향(安珦)께서는 1260년(고려 원종 1년), 1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시고, 교서랑(校書郞), 감찰어사(監察御史), 상주판관(尙州判官) 등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셨습니다. 충렬왕 복위 후에는 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에 임명되셨으며, 섬학전(贍學錢)이라는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셨습니다. 안향의 학풍은 백이정(白이正), 우탁(寓倬) 등의 제자들에게 이어졌으며, 이후 이제현(李齊賢), 이색(李穡) 등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안향께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서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셨으며, 문묘(文廟)와 장단(長湍)의 임강서원(臨江書院), 순흥(順興)의 소수서원(紹修書院), 곡성(谷城)의 회헌영당(晦軒影堂)에 제향되었습니다. 묘소는 장단 대덕산에 있으며, 경기도 부곡에 안자묘(安子廟)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영린의 후손 중에는 고려 시대의 충신 안문개(安文凱)께서 계십니다. 안문개께서는 심양왕 고(瀋陽王暠)의 사건으로 인해 원나라에 억류되셨으나, 왕을 보호하며 경비를 국내에서 조달하셨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충숙왕 14년(1327년)에 1등 공신으로 책봉되셨으며, 순흥부원군(順興府院君)의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영화의 후손으로는 고려 충숙왕 11년(1324년)에 원나라 제과(制科)에 급제하신 근재(謹齋) 안축(安軸)께서 계십니다. 안축께서는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하셨으며, 순흥의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으셨습니다. 또한, *관동와주(關東瓦注)*라는 문집을 남기셨습니다.

조선 시대 이후에는 많은 후손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안중근(安重根), 을사조약 반대 상소를 올린 안병찬(安秉瓚), 충주 황강 전투에서 전사하신 안승우(安承禹), 민족운동가 도산 안창호(安昌浩),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安益泰), 백산상회 설립자인 안희제(安熙濟), 역사학자 안재홍(安在鴻) 등이 있습니다.

시조 및 후손들의 제사
순흥안씨의 시조이신 안자미(安子美)께서는 고려 신종(1197~1204)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셨으며, 후에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으로 추봉되셨습니다. 부인의 기록은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으며, 묘소는 소백산에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1654년, 후손이신 순원군(順原君) 안응창(應昌)께서 의성현감(義城縣監)으로 부임하시면서, 단절된 시조의 제사를 복원하셨습니다. 순흥 평리촌(坪里村, 현 석교리 203번지)을 시조공의 고택 유지로 추정하고, 시조공과 아들 태사공(太師公, 휘 孚)의 제단을 조성하여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습니다. 이후 제단이 방손들의 제단과 합쳐졌다가, 1988년 순흥 읍내리 비봉산 아래에 새롭게 추원단(追遠壇)을 조성하였으며, 매년 음력 10월 1일 전국의 후손 2천여 명이 모여 참배하고 세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추밀공(樞密公) 영유(永儒)께서는 송나라 가태 신유년에 태어나셨으며, 문성공 안향(安珦)의 조부이십니다. 고려 밀직부사(密直副使)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하시고 태사문하시중(太史門下侍中)으로 추증되셨습니다. 후손들이 묘소를 정비하고 *영모암관리위원회(永慕庵管理委員會)*를 설치하였으며, 음력 10월 1일 순흥 추원단에서 제사를 올린 뒤, 오후 2시에 영주 감곡리 지장산의 묘소에서 별도로 제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태사공 안부(安孚)께서는 고려 신종 갑진년에 문과에 급제하시어 밀직부사, 판도판서 등을 역임하셨으며, 태사문하시중에 추증되셨습니다. 부인 순정군부인(順政郡夫人) 강주우씨(剛州禹氏)는 예빈시동정(禮賓寺同正) 우성윤(禹成允)의 따님입니다. 묘소는 순흥에 있다고 전해지나 현재 표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순흥안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쳐 현대까지도 학문과 충절을 중시하는 가풍을 이어오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후손들이 전통을 기리고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