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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이씨 문열공파 족보 조회

 

성주이씨 문열공파 족보 조회하기 ▶

 

 

[정의]
성주이씨는 이순유(李純由)를 시조로 하고, 이석견(李碩堅)과 이조년(李兆年)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고령군 세거 성씨입니다.

 



[연원]
성주는 현재의 경상북도 성주 지역을 의미하며, 성주이씨의 시조인 이순유는 신라 경순왕 시기에 재상을 지냈습니다. 신라가 멸망한 후 현재의 성주읍 경산리로 이주하여 은거하였으며, 이에 태조 왕건이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호장(戶長)으로 임명하였습니다.

 



성주이씨는 고려 원종 대에 이르러 12세손인 이장경(李長庚)이 중흥 시조로 자리하였습니다. 그의 손자인 평장사 이승경(李承慶)은 원나라에서 벼슬하며 큰 공을 세웠고, 이에 원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인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여 본관을 농서로 삼았습니다.

 



이후, 밀직사사 이백년(李百年), 참지정사 이천년(李千年), 낭장 이만년(李萬年), 참찬 이억년(李億年), 정당문학 이조년(李兆年) 등 다섯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며 가문이 번성하였고,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본관을 성주로 정하여 세계를 이어왔습니다.

이포(李褒)와 이인복(李仁復)이 명성을 떨쳤으며, 이인민(李仁敏)은 대제학을 역임하였습니다. 또한, 이인임(李仁任)은 문하시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발(李潑), 이숭문(李崇文), 이지활(李智活), 이지원(李智源), 이견기(李堅基), 이집 등이 이름을 남겼으며, 이직(李稷)은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이의(李誼)와 이자건(李自建)은 대사헌을 지냈습니다.

[입향 경위]
고령 지역에 입향한 성주이씨들은 주로 밀직공파 이석견(李碩堅)의 후손들과 문열공파 이조년(李兆年)의 후손들입니다. 이들은 정치·행정·경제적으로 밀접한 생활권을 형성했던 고령 지역으로 분가하여 정착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황]
고령군에는 성주이씨의 대표적인 세거지가 여섯 곳 있으며, 가구 수 및 인구 수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집성촌을 살펴보면, 7세손 이덕구 대에 이르러 정착한 것으로 보이는 덕곡면 광천마을이 있으며, 이곳에서 분가한 개진면 반운리와 성산면 밀직공파에서 갈라져 나온 개진면 생리가 있습니다. 또한, 문열공파의 후손들이 난을 피해 이주한 다산면 송곡리, 문열공파 시조인 이조년의 증손 이이의 후손들이 정착한 성산면 원당마을, 그리고 임진왜란 시기에 피난하여 정착한 운수면 팔산리 등이 있습니다.

[관련 유적]
운수면 대평리에는 이조년의 묘소와 재사인 매국정이 있으며, 다산면 벌지리에는 이포의 묘소와 재사인 누암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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