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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 족보 시조 항렬

ozia 2025. 4. 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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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 조씨 족보 시조 항렬 조회

 

풍양 조씨 족보 시조 항렬 조회하기 ▶

 

 

풍양조씨의 발상지는 고려 시대의 풍양현으로, 현재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에 해당합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산세가 수려하고 기운이 맑아 은자와 도인들이 머물던 신령한 장소로 전해집니다.

 



풍양조씨의 시조는 신라 말기에 활동한 '바위'라는 이름을 가진 은자입니다. 그는 천마산에서 뻗어나온 지맥인 독정산의 깊은 암굴에서 수도생활을 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고려 태조 왕건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남쪽으로 정벌하던 도중, 이 은자의 덕망과 기개를 전해 듣고 직접 찾아가 그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바위는 이미 70세의 고령이었으나, 그의 모습은 매우 웅장하고 위엄 있었으며, 길게 흘러내린 수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고 합니다.

 



왕건은 바위의 인품과 풍모에 깊이 감복하여 그를 장군으로 삼았고, 이후 수차례의 남정에 함께하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러한 공로로 인해 그는 고려 개국공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왕건으로부터 '맹'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문하시중이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며 풍양조씨의 시조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풍양조씨는 시조 이후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오며 명문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중간 세계가 전란과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일부 단절되는 일이 있었고, 그에 따라 후손들은 각기 계파를 달리하여 나뉘게 되었습니다. 현재 풍양조씨는 전직공파, 평장공파, 상장군공파의 세 주 계파로 구성되며, 이 중 전직공파는 다시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로 세분되어 총 다섯 개의 주요 계파, 즉 오대파로 불립니다.

고려 시대에는 조씨 가문에서 수많은 문무관이 배출되어 가문을 빛냈으며, 조선 왕조에 들어서는 더욱 찬란한 역사와 명예를 이어갔습니다. 문과 급제자만 해도 180여 명에 이르고, 정승을 역임한 인물이 7명, 문헌공 4명, 그리고 왕비 2명이 배출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문신과 무관, 도학자, 문장가들이 나와 풍양조씨는 명문 성씨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풍양조씨 후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으며, 국내외 각계각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쌓아온 전통과 자긍심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더욱 번창하고 무궁한 발전을 이루어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풍양조씨는 그 명성과 정신을 이어가며 한국 성씨 문화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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