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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황씨 족보 항렬 시조

ozia 2025. 4. 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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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해 황씨 족보 항렬 시조 조회

 

평해 황씨 족보 항렬 시조 조회하기 ▶

 

 

우리나라 황씨 성의 기원은 중국 후한 시대의 학자였던 황락에서 시작됩니다. 그는 서기 28년, 신라 유리왕 5년에 후한의 유신으로서 구대림 장군과 함께 교지국으로 사신 임무를 수행하던 중, 풍랑을 만나 현재의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지역인 평해에 표류하게 되었고, 이후 그곳에 정착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황락은 우리나라 황씨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평해 지역에는 황장군의 묘가 남아 있습니다.

 



황락의 후손 중 황갑고, 황을고, 황병고라는 세 형제가 있었으며, 이들은 각각 평해황씨, 장수황씨, 창원황씨의 시조로 나뉘게 됩니다. 2000년 기준으로 창원황씨의 인구가 약 25만 명으로 가장 많고, 장수황씨는 약 14만 6천 명, 평해황씨는 약 13만 7천 명 정도로 집계되었습니다.

 



평해황씨는 장남인 황갑고의 후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만 초기 세대의 계보가 명확하지 않아, 고려 시대의 인물인 황온인을 기세조로 삼아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평해는 과거의 지명으로 현재의 울진군 평해읍을 가리킵니다. 평해황씨는 후손의 계열에 따라 검교공파, 충절공파, 충경공파 등으로 나뉘어집니다.

 



황씨 가문에는 조선 개국과 국가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도 다수 있습니다. 황희석은 조선의 건국에 기여한 무장으로 위화도 회군과 정몽주 제거에 관여하였으며, 조선 개국공신으로 임명되어 평해군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아들 황상은 태종의 딸과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으며, 병조판서와 8도 도총제의 직책을 수행하였습니다.

세종 시대에는 황계하가 과거에 합격해 감찰로 일하였고, 세조 때에는 황진손이 과거에 올라 관직을 지냈습니다. 중종 시기에는 이황의 제자였던 황준양이 문관으로 활동하며 금계집이라는 문집을 남겼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황여일이 문과에 급제한 후 권율 장군의 종사관으로 참전하였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경험도 있습니다. 또한 황윤석은 영조 시기에 사마시에 합격한 뒤, 국어 연구에 도움을 주는 여러 저서를 남겼습니다.

현대 인물로는 영화배우 황정순 씨가 있습니다. 그녀는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서울 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동양극장의 청춘좌에서 데뷔하였습니다. 이후 영화, 라디오, 연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서민적인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마부〉, 〈박서방〉, 〈팔도강산〉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또한 황산덕 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법학자로 활동하였고, 동아일보 논설위원, 성균관대학교 총장, 법무부장관, 문교부장관 등 주요 공직을 역임하며 학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한 인물입니다.

이처럼 황씨 가문은 유서 깊은 역사와 함께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며 한국사의 다양한 장면에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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